153화 153화 미레가 장난스럽게 내 무릎에 털썩 앉았다. 순간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꽂혔다. “장난이에요. 킥킥.”
ㅂ연무장 입구를 밀고 들어서는 순간,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목소리가 3층 높이의 석조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고개를 들어 관람석을 훑었다.
빈자리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1층부터 3층까지, 빽빽이 들어찬 인파가 저마다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각약각색의 모습이었다.
대부분은 나처럼 평범한 인간의 외형이었지만, 중간중간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붉은 피부를 가진 자, 온몸이 푸른빛으로 물든 자.
어떤 이는 머리 위로 짐승의 귀가 쫑긋 솟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인간의 골격 자체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그들끼리의 소통은 어색함 없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스테라 집정관의 서신들 보셨습니까? 플레이어들과의 계약 제한이라니. 불길하군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목숨에 지장주지 않을 만큼만 허용? 도대체 놈들 목숨이 얼마나 허약한지,어느 정도인지! 알 방법이 있나!
-그러나 총군주의 자리가 공석이라는 소문이 돌고있는지금에…….
-공작께서 충격발언에 마정석마비주의를 하라더군요. 호호.
나와 함께 둘러보던 미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많은 귀족분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건 처음 봐요. 아스테라님의 즉위식만큼은 아니지만, 비견될 정도예요.”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바헬무토 공작은 뭘 하려는 걸까요?”
무언가의 시작 전. 그런 느낌이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학생들이 마지막 잡담을 나누듯,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연무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두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를 알아본 시종 하나가 다가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손짓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층, 두 층. 오를수록 더 많은 대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권력 다툼, 영지 분쟁, 누군가의 스캔들. 귀족들의 세계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마침내 가장 꼭대기 층에 발을 디뎠다.
화려한 의상을 걸친 마족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다.
금실로 수놓은 옷, 보석이 박힌 장신구 그리고 육성중이거나 강해지기 위해 연구중인 방법들.
그들은 서로에게 과시하듯 몸짓을 크게 하며 떠들어댔다.
공작에게 잘 보이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느껴졌다.
그러나 공작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들어 주변의 마족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들이 비켜선 사이로, 더 높은 곳으로 이어진 계단이 보였다. 미레와 함께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최상층 중앙에는 특별한 좌석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자리임이 명백했다.
붉은 벨벳, 섬세하게 조각된 등받이. 고급스러웠다.
“푹신하네. 좋다.”
미레가 장난스럽게 내 무릎에 털썩 앉았다. 순간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꽂혔다.
“......미레야?”
“장난이에요. 킥킥.”
그들은 헛기침을 하며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미레가 웃으며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바로 옆에는 바헬무토 공작이 말없이 앉아 있었다가 미레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는, 공작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말했다.
“남주님. 자리는 괜찮으신지요?”
“좋네. 연무장이 한 눈에 다 보여.”
실제로 그랬다.
이 높이에서는 아래층의 모든 관람석과 중앙의 넓은 연무장 바닥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자, 주변에 모여 있던 마족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정적이 흘렀다.
그들은 눈알을 굴리며 내 정체를 파악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곧 포기했는지, 하나둘 자신의 자리로 흩어졌다.
바헬무토 공작은 앉는 대신 자신의 자리에 놓여있던 종을 집어 울렸다.
여인의 절명 같은 스산한 울림이 홀 가득 퍼져나갔다.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옷자락의 스스로, 발을 옮기는 소리, 침을 삼키는 음성까지. 숨도 얕게 쉬려는 듯 귀족들의 몸이 경직되었다.
적막이 그들을 짓누렸다.
이제 실내에는 아무도 감히 깊은 숨을 내쉬지 못하는 듯한 고요한 적막만이 지배했다.
“바헬가를 지지해주시는 모든 귀족분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그 무게는 철저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청중을 한 바퀴 훑었다.
지지자들의 순종적인 눈빛을 확인한 공작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희미하게 걸렸다.
침묵 속에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강해지는 것.”
그는 마치 연설의 포문을 열 듯, 단어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쥐어 단상 앞으로 힘껏 내밀었다.
그 팔뚝의 근육이 경직되고, 손가락 사이로 흰 줄이 그어졌다.
“그리하면 새로운 세계가 우리를 맞이한다는 사실을, 감히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승! 상승!”
모인 귀족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공작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저는… 변방의 나부랭이였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몇몇 분들이 분명히 여기 계시겠죠.”
대다수는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몇몇은 얕은 인상을 찌푸렸고, 또 다른 몇몇은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의 감정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결국 저는 이 자리에 올라섰고, 마왕성 직속 2급 요원이라는 명예를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성장의 위는, 끝내 단단한 한계에 부딪히더군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가 신세한탄이나 하려고 모두를 부른게 아닌것을!
청중의 시선이 공작의 뒷말에 맹렬하게 집중했다.
“하지만!”
모두가 설마 하는 눈빛으로 바헬무토 공작을 노려봤다. 수많은 눈동자가 동시에 그에게 외치고 있었다.
‘당신이, 그 한계를 뚫었단 말인가!’
바헬무토 공작은 연설대를 벗어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의 발걸음을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족들의 눈알들이 미세하게 떨리며 그를 따라 또르르 굴러갔다.
연무장의 한 가운데에 선 공작의 등 뒤로 검은 연기가 뭉클거리며 피어솟았다.
하나, 둘, 셋.
수가 늘어났다.
넷, 다섯, 여섯. 연기 속에서 무언가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일곱, 여덟.
이내 여덟 개의 짙은 그림자가 공작의 깃털처럼 등 뒤로 펼쳐졌다.
그 수가 셀 수 없이 늘어나더니, 이내 여덟 개의 짙은 그림자가 공작의 깃털처럼 등 뒤로 펼쳐졌다.
“검은 창……! 실제로 보게 되다니! 노출을 꺼리던 공작께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마어마하군. 저 창 하나하나가 왠만한 마족보다도 더 쌔보이는군.”
“일일군단!”
그들의 평가가 들려왔다.
흐릿하게 떠다니던 검은 창들이 점차 선명한 형태를 이뤘다.
검은 연기 속에서 개별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창날의 예리함까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 자태가 모인 이들에게 절로 경외감을 안겨주었다.
누구도 눈을 떼지 못했다. 떨 수도 없었다.
오직 공작만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가에 여전한 미소를 띠고.
“여기있는 대부분의 영광스런 귀족분들께선 제 창을 4개이상 받아내지 못할껍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는 분은 지금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눈치없이 내가 손을 들어 나가진 않았다.
미레또한 근질근질한듯 손끝을 움찔했으나 얌전히 무릎에 놔두었다.
“좋습니다.”
경악과 기겁으로 군중이 물들었다.
“저건……누가와도 못 막겠군.”
검은 창이 공작의 시선을 따라 살아있는 듯 흐물거렸다. 창날이 뱀처럼 구부러졌다가 다시 곧게 펴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맹수가 몸을 푸는 것 같았다.
“여러분들께 육성중인 후계자, 또는 일가의 경비대장이든 무력을 자랑할 수 있는 자들을 데려와달라는 무리한 요청에 응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공작의 말에 귀족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곧 자신들이 얼마나 뛰어난 인재를 길러냈는지 증명할 차례였다.
각 귀족가에서 차출된 힘있는 자들이 하나씩 공작에게 도전했다.
첫 번째 도전자가 앞으로 나섰다.
도전자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마력이 응집되어 공기를 가르며 예리한 바람 소리를 냈다.
“……졌습니다.”
“뛰어난 마력이었습니다.”
“달콤한 패배입니다.”
“영광입니다, 공작.”
일방적인 도전자의 연격을 검은 창으로 막아낸다.
이 후 모든걸 쏟아부었다고 판단한 도전자는 방어자세를 취한다.
공작은 단 한 합.
일격.
찌르거나, 휘두르거나.
도전자들은 공작의 힘이 조절된 공격을 막고는 예의를 갖추며 내려갔다.
“여러분들을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공작의 목소리에 귀족들이 술렁였다.
이어서 품속에서 실크천으로 감싸진 무언가를 꺼냈다.
천을 한 겹, 두 겹 벗겨낼 때마다 은은한 묵빛이 새어 나왔다.
마지막 천이 벗겨지자, 묵빛 목걸이가 드러났다.
어둠을 삼킨 듯한 검은 보석이 불길하게 빛났다.
‘저건.’
나침반은 잠잠하게 반응이 없었다.
[성유물 탐색 나침반]
성유물의 위치 탐색합니다.
단,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신창을 소환해 미레에게 쥐어줬다.
“앗?”
오른쪽 눈을 깜빡이자 미레가 미소지으며 신창을 꽈악 쥐었다.
미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나침반의 불합리적인 짧은 인지거리를 알고 있기에 공작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공작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의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긴장? 아니면 흥분?
그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공작과 검은 창에 쏠렸던 시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동자들이 천천히, 일제히 나를 향해 굴러갔다.
귀족들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바헬무토 공작. 나를 부른거겠지?”
“허허허. 맞습니다.”
“강해졌네. 축하해. 창도 그때보다 더 굵어진거 같아.”
“감사합니다. 주신 축복덕분입니다.”
‘……축복이라.’
어째서인지 갑자기 정시은이 내게 무릎을 꿇으며 길드를 바치겠다던 그 날이 떠올랐다.
‘쌔한데?’
그러나 걱정은 쓸데없는 짐 일뿐.
나침반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에 닿자 진동이 더 격렬해졌다.
부르르르르—
손을 뻗어 묵빛 목걸이를 향해 나침반을 내밀었다.
찰나.
나침반의 좁은 틈새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슈우우웅—
가느다란 붉은 광선이 어둠을 가르며 완벽한 직선을 그렸다. 흔들림도, 휘어짐도 없이 목걸이를 정확히 겨냥했다.
빛이 묵빛 보석에 닿는 순간.
콰아아아—!
목걸이가 반응했다.
검은 보석 속에서 검붉은 기운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마치 깊은 심연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듯, 불길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성 유물을 탐지하였습니다.]
공작이 손에 쥔 목걸이가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지만, 그는 황급히 다시 움켜쥐었다. 그의 얼굴에 당황과 놀라움이 스쳤다.
‘맞네. 여기에와서 바헬무토 공작이 2개나 찾아줬어.’
“묵빛으로 된, 우리 마계에서 나올뻡한 물건이 아닌 것들을 수색했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건 이것이 맞으시죠?”
그 순간, 바헬무토 공작의 인상이 달라 보였다.
처음 봤을 때의 오만방자한 늙은 권력자가 내게 무언가를 건네주려는, 묘하게 친절한 아저씨처럼 느껴졌다.
“맞아.”
“찾느라 꽤나 고생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났다.
“많은 자본을 써야 했죠. 쓸려간 목숨도 있지만.”
공작은 회한 어린 눈으로 손 안의 목걸이를 내려다봤다. 검은 보석이 그의 눈동자에 반사되어 더 깊게 보였다.
“그 예전을 무모한 도전이라고도 부르지 않겠습니다. 그건 자살행위였으니까요.”
“아.”
공작의 입가가 환하게 펴졌다. 콧수염이 위로 올라가며 주름진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이번엔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래.”
묵빛 목걸이가 내 손에 쥐어졌다.
[침묵의 목쇄(성유물)]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빛을 뺏겨 슬퍼하고 있습니다.
‘뺏겼다고?’
이상했다.
성유물 설명은 능력이나 효과를 나타내는 대신, 이건 마치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목걸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며 공작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제 하고 싶은건?”
그는 기다렸다는 듯, 전신의 힘을 쥐어짜듯!
큰 소리로 외쳤다!
“축복! 그 축복을!”
인벤토리에 미리 추출한 강화를 꺼내 스포이드에 한 방울 담아 공작에게 던졌다.
스포이드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공작이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마치 성배를 받드는 것처럼.
그가 스포이드를 눈높이로 들어 올렸다.
“아아아ㅡ! 이 영롱한 빛깔이며! 마신님이시어!”
‘뭐? 마신?’
어리둥절한 나의 반응과는 별개로 모두가 기겁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숨을 멈추었고, 그 조그마한 동작도 하지않은채 경직됐다.
수많은 마족들이 단체로 충격을 먹은 듯 바헬무토 공작만을 쳐다봤다.
어서 뒷말을 마저 하라는 듯!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 공작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행동으로 답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스포이드를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의 우는 것에 가까웠다.
눈가가 붉어졌다. 입술이 떨렸다.
톡.
한 방울이 혀 위에 떨어졌다.
공작이 눈을 감았다.
흐느끼듯 떨리는 호흡으로, 그 한 방울을 천천히 음미했다.
침묵.
긴, 긴 침묵.
귀족들의 시선이 공작에게서 나에게로, 다시 공작에게로 왔다 갔다 했다.
“아, 아아아! 또 느껴집니다!”
공작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또 강해졌습니다! 온몸으로 힘이! 마력이! 아아아아ㅡ!”
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솟구쳤다.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다시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공작은 스포이드를 두 손으로 공손히 들어 내게 건넸다. 마치 성물을 봉헌하듯.
나는 괜히 찝찝해서 손끝으로만 스포이드를 받아 재빨리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공작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제 전력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갑자기?’
공작의 등 뒤에서 검은 창들이 피어올랐다.
하나, 둘, 셋……아니, 수십 개.
순간적으로 밤이 강림한 것처럼 어둠이 연회장을 삼켰다. 빛조차 검은 창들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더 굵어졌고, 커지기까지.
복제되듯 끊임없이 늘어나며 시야 가득히 음침한 어둠으로 가득 찼다. 마치 거대한 검은 날개가 펼쳐진 것 같았다.
검은 창이 한번 더 복제되듯 늘어나며 시야 가득히 음침한 어둠으로 가득찼다.
거절의 의사를 펼치려했지만, 너무나도 애절하는 눈빛이었다.
일 끝나고 한잔하러 가자던 반장님과 조장님의 권유를 뿌리칠수 없었는데.
-너 아니면 같이 술 먹을 사람이 없단 말이야…….
‘아 진짜.’
“알겠어. 대신 설렁설렁 하지마.”
“크히히히히힛, 좋습니다! 좋아요!”
* * *
좌석에 앉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을 잊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저 공작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광경을 볼 뿐이었다.
슈우우욱! 창! 카앙!
검은 창들이 직선으로 돌진했다.
그런데—
휘익!
갑자기 궤적이 휘어졌다. 뱀처럼 구불거리며 예상치 못한 각도로 파고들었다.
어떤 창은 허공에서 사라졌다가—
슈욱!
상대방의 등 뒤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또 다른 창은 순식간에 거대해지더니—
쾅!
거대한 망치처럼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후려쳤다.
직선, 곡선, 순간이동, 타격.
일반적인 공격과는 다른 변칙적인 기술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놀라운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수십, 수백 개의 창들이 각기 다른 공격을 펼치면서도—서로 부딪히지 않았다. 진로를 방해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계산된 궤적으로, 동시에 쏟아졌다.
"크으윽……!"
공작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ㅡ
“하아……하아……”
연회장 곳곳에서 숨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귀족들이었다.
그들의 숨소리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칠었다. 마치 야수가 먹잇감을 발견했을 때 내는 위협음과 비슷했다.
합이 길어질수록.
시선이 움직였다.
바헬무토 공작에게 쏠렸던 이목이—천천히, 그의 상대에게로 옮겨갔다.
저 무지막지한 공격들을 막아내는 자.
챙! 카앙! 퍼억!
더 빠르게 움직이고.
더 강하게 쳐내고.
어떤 것은—
퍽!
그냥 몸으로 받아낸다.
창끝이 어깨를 스쳤다. 하지만 공작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몰아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
합이 시작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두 발.
쿵.
연무장의 바닥이 금이 갔다. 발이 박혔다. 땅을 파고들었지만.
그대로였다.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아아아아아—!”
바헬무토 공작이 포효했다.
슈우우우욱!
모든 검은 창이 하나로 합쳐졌다.
거대한, 거대한 검은 창 하나.
필살기.
"받아라아아아—!"
콰아아아아앙!
공기가 찢어졌다.
파아아아앙!
파공음이 터져 나갔다.
퍼억—!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연회장의 벽이 흔들렸다. 귀족들의 옷깃이 펄럭였다.
피부로 느껴졌다.
뼈까지 울리는 충격파를.
모두가 본능적으로 팔로 얼굴을 가렸다.
“하아, 하아.”
공작은 탈진하듯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갸냘픈 검은 창 하나를 지지대로 사용하고 있었을 뿐 본래의 용도로 쓰기엔 무리로 보였다.
먼지가 가라앉았다.
연기가 천천히 흩어졌다.
모두가 공작의 죽음을 예상했다.
아주 강한 마족을 제대로 도발한 댓가는 심장 가장 안쪽에 박혀 있는 마석이리라.
귀족들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바헬무토 가문의 봉납식이었나……!”
“저 자는 대체 누구지?”
“아아아…미친,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저렇게 강한 분께서 과연 우릴 살려둘까?”
공포가 번졌다.
누군가 도망갈 준비를 했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을 자세를 취했다.
그때.
“모두들……보셨습니까.”
힘 한 톨 없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퍼졌다.
바헬무토 공작이었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요한 환경이 그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리게 해주었다.
공작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하지만 웃고 있었다.
“마신의 화신께서…….”
공작이 떨리는 손으로 연무장 중앙을 가리켰다.
“우리에게 강림하셨습니다.”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쏠렸다.
먼지 속에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두 발은 여전히 그 자리에.
상처 하나 없이.
“천족과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공작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묵빛의 도구, 장식을 봤다면 가져오십시오!”
공작이 두 팔을 벌렸다.
“화신께서 축복을 내려주실 겁니다!”
침묵.
그리고—
쿵.
한 귀족이 무릎을 꿇었다.
쿵. 쿵.
또 다른 귀족들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연회장 전체가 무릎 꿇는 소리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