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2화. 지워지지 않는 밤꽃 향기]
달칵.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거실의 소음이 차단되었다. 에어컨의 냉기 대신, 방금 누군가 씻고 나간 듯 덥고 후끈한 수증기의 열기가 민우의 전신을 감쌌다. 민우는 거울 앞에 섰지만, 이미 뿌연 습기에 가려져 제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민우는 떨리는 손으로 바지 단추를 풀었다.
호스에서 쏟아졌던 차가운 수돗물을 듬뿍 머금은 면바지는 천 근 만 근 무거웠다. 지퍼를 내리자마자 코를 찌르는 눅눅한 열기가 얼굴에 확 끼쳐 올라왔다. 젖은 천이 살갗에 찰싹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민우는 벽에 한 손을 짚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지를 아래로 밀어냈다.
쩍, 찌걱.
살가죽이 찰싹 달라붙어 젖은 바지를 억지로 끌어내려야 했다. 이 끈적한 소리가 기분 나쁘게 욕실 타일에 부딪치며 울려퍼졌다.
바지가 발목까지 내려가자, 그 안의 참상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흰색 드로즈 팬티는 이미 유백색 얼룩과 수돗물이 뒤섞여 희뿌옇게 뒤덮여 있었다. 특히 앞부분은 아까 새댁이 밖에서 손바닥으로 문질러댔던 탓에 섬유가 보풀처럼 일어나 있었고, 그 사이로 미처 마르지 못한 걸쭉한 액체가 실처럼 늘어져 욕실 타일 바닥 위로 툭 떨어졌다.
민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을수록 아까 밖에서 보았던 남혜정의 엉덩이 밑살과, 티셔츠 밑단 사이로 번들거리던 그 붉은 속살의 잔상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정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민우의 아랫도리는 여전히 기이한 열기를 머금은 채 뻐근하게 부풀어 있었다.
스윽.
그때, 반투명한 욕실 문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비쳤다.
"민우야, 문 앞에 수건이랑 진수 옷 뒀어."
남혜정의 목소리였다. 바로 문 한 장을 사이에 둔 거리. 민우는 숨을 멈추고 굳어버렸다.
"바지는 문틈으로 내놓으렴. 내가 지금 바로 세탁기 돌릴게."
민우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문 하단의 틈새로 그녀의 하얗고 맨발가락 끝이 보였다. 그녀는 가지 않고 그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민우야? 얼른 벗어서 줘야지."
재촉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말끝에 섞인 미세한 떨림이 민우의 귀를 간질였다. 문고리를 쥔 손에 식은땀이 배어나올 만큼, 민우는 아직 팬티조차 벗지 못한 채 반쯤 내려간 바지를 걸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이 질척거리는 뭉치를 문밖으로 내놓는다는 건… 자신이 바지 속에 쏟아낸 그 뜨겁고 비릿한 흔적을, 그녀의 손에 직접 쥐여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문 너머의 침묵이 길어졌다. 혜정은 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문틈 아래로 보이는 그녀의 맨발가락이 살짝 오므라들었다 풀어지기를 반복하는 게 보였다. 마치 초조하게 기다리는 듯, 아니면…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민우야?"
이번엔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부드러움 속에 섞인 무언가, 억지로 누르는 듯한 숨소리가 문틈을 타고 스며들었다.
"아줌마… 기다리고 있잖아."
'기다리고 있다'는 그 말 한마디가 민우의 심장을 쿵, 하고 내려 앉혀버렸다. 단순한 세탁을 재촉하는 말이 아닌, 민우의 '흔적'을 손에 쥐고 싶어 하는 숨길 수 없는 갈망이 느껴졌다.
"아, 저, 저... 잠시만요. 금방 드릴게요."
민우의 손이 떨렸다. 문고리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를 쥐어짜며 힘을주어 팬티까지 한번에 발목 아래로 걷어냈다. 수돗물에 젖어 묵직해진 천더미가 바닥 위로 철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알몸이 된 민우의 허벅지 사이로 욕실의 눅눅한 공기가 스쳤다. 그 순간, 그의 성기가 차가운 공기에 반응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민우는 바닥에 떨어진, 끈적한 점액으로 범벅이 된 바지와 팬티를 한데 뭉쳐 집어 들었다. 차가운 물기와 끈적한 단백질의 감촉이 손바닥 전체에 불쾌하게 감겼다. 이것을 그녀에게 건네야 한다는 사실에 민우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그는 아주 천천히 욕실 문을 한 뼘 정도 열었다.
털컥.
문틈으로 새어 나온 습한 열기가 복도의 차가운 공기와 부딪혔다. 그 뜨거운 공기 너머로, 혜정의 손이 먼저 들어왔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살짝 떨리며 민우의 손에 든 젖은 천더미를 받아 들었다.
손끝이 스치는 찰나, 그녀의 뜨거운 체온이 민우의 손등에 전해졌다. 혜정의 손바닥이 민우의 손등을 살짝 스쳤고, 그 짧은 접촉이 그녀의 체온을 더 뜨겁게 달구었다. 방금 전까지 민우의 몸에서 나온 끈적한 액체를 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는 천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을 살짝 오므려 천을 더 깊이 움켜쥐었다.
"…고마워."
혜정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평소의 우아함은 온데간데없고, 숨이 살짝 가빠 떨리는 저음이었다. 문 너머 실루엣이 움직였다. 혜정은 벗어 준 바지를 코끝에 바짝 가져가고 있었다. 이내 후우욱,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민우는 그 들이키는 소리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아줌마가… 내 냄새를 맡고 있어.'
민우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문 한 뼘 틈새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동자는 초점이 풀린 채 젖어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민우의 귀를 간질였다.
"민우야…"
그녀가 다시 불렀다. 이번엔 목소리가 더 낮아져,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이거, 네 거지?"
문틈으로 그녀의 손가락이 천을 꼭 쥔 채 살짝 들어 올려졌다. 젖은 천에서 떨어진 한 방울의 유백색 액체가가 그녀의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그 순간, 둘 사이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민우는 대답 대신 숨을 죽였다. 혜정은 그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천을 코에 더 가까이 가져다 대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욱—
그 소리가 문틈을 타고 민우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몸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문 너머로 그녀의 다리가 미세하게 오므라들며 허벅지 안쪽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하아…"
짧은 한숨. 하지만 그 한숨 속에는 숨길 수 없는 갈망이 담겨 있었다.
민우는 문을 더 열고 싶었지만,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문 한 뼘 틈새로 서로의 숨소리만이 오갔다. 그 미묘한 거리감이, 오히려 둘 사이의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빨리 씻어."
혜정이 먼저 침묵을 깼다.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애써 평온을 가장했다.
"아줌마가… 세탁기 돌려놓을게."
그녀는 천을 꼭 쥔 채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틈으로 보이는 그녀의 손가락이 천을 꼭 쥐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치 그 천을 놓치면 모든 게 사라질까 봐 두려운 듯이.
민우는 문을 닫았다. 달칵.
그리고 그는 거울 앞에 섰다. 뿌연 습기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멍청한 녀석의 얼굴 그곳에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평범한 녀석의 얼굴.
'뭐... 뭐였지, 방금 그건...'
민우는 떨리는 손으로 샤워기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쏟아지며 그의 몸을 때렸다. 하지만 그 물줄기 아래에서도, 코끝에 남아 있는 그 비릿한 냄새와, 문틈으로 스쳤던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사라지지 않았다.
물줄기가 머리에서부터 어깨, 가슴, 그리고 아랫배를 타고 흘러내렸다. 차가운 물이 피부를 스치며 소름을 돋게 했지만, 그 자극은 오히려 몸속에 남아 있는 열기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민우는 샤워기 헤드를 벽에 걸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 사이로 물이 흘러넘쳤지만, 그 물속에서도 그녀의 체취가 섞여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까... 진수 엄마 손... 손등을 스쳤을 뿐인데... 왜 그렇게 뜨거웠지?'
그 짧은 접촉이 자꾸만 떠올랐다. 문틈으로 들어온 그녀의 손가락이 천을 받아 들던 순간. 살짝 떨리던 그 손끝, 그리고 천을 꼭 쥐며 코에 가져다 대던 그 미세한 움직임. 그리고 숨을 들이마시던 그녀가 내뱉던 그 소리, '후우욱— 하아-' 그 숨결이 아직도 귓속에 맴돌았다.
민우는 고개를 저으며 샤워기를 더 세게 틀었다. 차가운 물이 머리를 때리며 정신을 차리게 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 자극이 몸을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젖은 바지 속에서 느껴졌던 그 끈적함. 그리고 자신을 억지로 끌어당기던 그 손길.
'미친놈... 이게 무슨 망상이냐... 세탁해 주려던 거겠지. 착각하지마. 진수 엄마가... 왜...'
잡념을 떨쳐내며 샤워 벨브를 잠그고,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았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은 아직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깊은 숨을 내쉬며 욕실 문을 열었다.
달칵.
문이 열리자마자, 복도에서 스며든 따뜻한 온기가 민우를 감쌌다.
지금 이 집안에 공기는 숨이 막혔다. 집 안 전체에 내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복도 끝, 거실 쪽에서 TV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민우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손에는 방금 세탁한 듯한 자신의 덜 마른 바지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세탁한 자신의 바지를 무릎 위에 펼쳐 놓고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얼룩진 부분을 살짝 문지르자,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끈적한 액체가 손끝에 미끄러지며 묻어났다. 그 미지근하고 걸쭉한 질감이 손가락 마디를 타고 은은하게 퍼지자, 혜정의 숨이 살짝 가빠졌다.
그녀는 그 손가락을 천천히 코끝으로 가져다 대었다. 코끝이 닿는 순간, 그 끈적한 잔향이 다시 그녀를 감쌌다.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그녀는 아주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민우는 그 모습을 보고 숨을 삼켰다. 혜정은 민우의 기척을 느끼고 황급히 손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살짝 붉었고, 눈빛은 몽롱했다.
"어머 민, 민우야, 다 씻었니? 바지를... 급하게 빨았나봐. 진수 오기 전에 마르려나 모르겠네."
그녀는 바지를 들고 일어나 민우에게 다가왔다. 손에 든 바지는 아직 습기가 남아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 끝에 끈적한 흔적이 묻어 있었다.
"이거... 가져가. 집에 가서 한번 더 빨아야겠다. 얼룩이 잘 안 지워지네."
민우는 얼굴이 씨벌개져서 바지를 받아 들며 그녀의 눈을 피했다. 혜정이 바지를 건네면서 우연인지 손가락이 민우의 손등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 뜨거운 체온이 다시 느껴지자, 민우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다가와, 민우의 귀에 속삭였다.
“민우야… 다음엔 여유 있을 때 올래. 아줌마가 그땐 ‘깨끗이’ 세탁해 줄게.”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숨결이 귀를 간질이는 그 느낌에 민우의 몸이 살짝 떨렸다. 혜정의 손이 살짝 민우의 팔뚝을 스치며 내려갔다가, 아쉬운 듯 천천히 떨어졌다.
민우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혜정의 시선을 피하며 황급히 욕실로 들어가 문을 살짝 닫았다.
거울 앞에 서서 재빨리 혜정이 건네준 바지를 펼쳐 들었다.
한쪽 다리를 넣고 허리를 끌어올리며 자연스럽게 입은 뒤, 단추를 잠그고 지퍼를 올렸다. 손으로 옷자락을 가볍게 털어 정리하니, 그제야 조금 숨이 통하는 기분이었다.
민우는 슬그머니 화장실에서 나와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황급히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감사해요... 그럼... 저 가볼게요."
끼익— 쾅.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진수네 집의 그 눅눅하고 무거운 공기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민우는 현관 앞에 서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마을의 시원한 밤바람이 폐부 깊숙이 들어왔지만, 코끝에 남아 있는 그 기운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넓은 대리석 현관을 나오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운동장만 한 잔디 정원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가운데, 잘 손질된 잔디와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평소라면 부럽기만 하던 이 호화로운 공간이, 오늘은 끝없이 넓게만 느껴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옷자락이 스치며, 아직 마르지 않은 바지 안쪽에서 미지근한 습기가 피부를 간질였다. 민우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잔디밭 끝, 정원 조명 아래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듯했다. 아니, 착각인가. 하지만 그 그림자가 살짝 움직이는 것 같아 민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집으로 가는 길, 대저택의 긴 진입로를 따라 걷는 동안 익숙한 마을 풍경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담장 너머로 새어 나오는 불빛, 창가에 서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 이 냄새가… 이 습기가… 왜 이렇게 온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걸까.
민우는 가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합격 통지서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꽉 쥐며, 대문을 빠져나올 때까지 숨을 죽인 채 걸음을 재촉했다. 넓은 정원을 지나 마을 길로 나오자, 그제야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옷에 스며든 그 습기와 체취는, 집을 나와도 민우를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