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46)
459.
학교 앞 주점.
<<아르마딜도>>
옛날 그 시절처럼....
나 그리고 민희를 비롯한 삼총사가....
자리를 함께 했다.
그러나....
시간 속에서....
우리들은 변해 있었다.
이제는 같이 수업을 듣지도 않았고...
또한 나래나 소미 또한....
그때 새내기도 아니었다.
이젠 어엿한 여대생으로서...
한참 예쁘고 씩씩한....
선배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오히려...
발전이 적은 것은....
민희였다.
여전히 수줍은 미소 속에서....
조용한 학창 생활을 보냈다.
나와 함께 다니면서 더....
어려진 듯한 모습이랄까.
그래도...
오랜만에 모두들 뭉쳐서 마시는 술자리라....
처음 기분은 좋았다.
비록...
명목 상 송별회였지만....
아직 군대 가는 것은 멀리 있었으니....
이별을 위한 술자리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냥 오랜만에...
한때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후배들과 다시 뭉쳐서....
기분 좋게 마시는....
술자리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술자리가 무르익는 가운데....
민희의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9시가 넘어가자 어김없이....
집에서 연락이 오는 모양이었다.
" 잠시만.... 나.... 전화 좀 받고 올께. "
결국 자리에서 받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서 가게 밖으로 나가는 민희를 보면서....
내 마음 한 구석에 커다랗고 날카로운 가시가 돋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로 돌아온 민희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 오빠... 미안한데 나 먼저 가야할 거 같아. "
나래나 소미를 향해서도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이었다.
" 애들아... 미안. 나 먼저 일어설께. "
" 흐음... 벌써 가야 되는 거야? 아니 넌 어떻게 나이를 먹으면서 더 통금시간이 빡세지니? 너... 사고라도 친 거야? "
소미의 시선이 슬쩍....
내 쪽으로 왔다가는 것을 느끼는 동안....
그녀의 입술은 거침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나래는 툭~! 팔꿈치로 그런 소미를 치며 웃으며 말했다.
" 그래. 알았어. 어서 가. 미안하긴 무슨. "
" 술값은 여기..... "
지갑을 꺼내려는 민희를 보면서 나래가 바로 일어나 밀어 넣었다.
" 얘~!!! 무슨 술값까지 챙기려고 그러니? 됐어. 나중에 학식에서 밥이나 쏴. 어여 가봐. 급한 거 같은데. "
민희는 바로 옷가지를 챙기며 나를 보았다.
" 오빠.. 그럼 내일 봐여. 나... 갈께. "
순간....
배웅을 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잠시 짧게 스쳐 지나갔지만....
시큰거리는 심장의 통증과 함께...
모른 척.....
그냥 자리에 엉덩이를 붙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알았어. 나는 조금만 더 마시고 갈께. 내일 보자. "
점점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그녀가 집에 가는 시간이 앞당겨 지면서...
나 또한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이렇게 민희를 먼저 보내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 응.... 갈께. "
민희 또한....
내가 데려다주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듯....
자연스럽게 가게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소미와 나래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을 보면서....
일부러 좀 더 밝게 목소리를 냈다.
" 자~! 갈 사람은 가고.... 마실 사람은 마셔야지. 자... 앞에 있는 잔을 비우고 새 잔으로 채우자! 건배!!! "
내가 든 맥주잔에 나래와 소미도 자연스럽게 잔을 부딪쳤다.
묵직한 맥주잔의 무게가 손목을 타고 팔뚝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약간 김이 빠진 생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반쯤 남은...
250cc정도는 되는 맥주를 단숨에....
한 번에 목으로 넘겼는데도....
가슴이 메마르게 느껴졌다.
이 답답한 느낌....
대체....
무엇으로 가실 수 있을까.
왠지 타는 갈증 속에서 벨을 누르고 바라보는 점원에게 힘껏 소리쳤다.
" 여기 삼천씨씨 아니 오천씨씨 피처 하나 더 주세요! "
**************
#17. 가을의 문턱에서 넷.
엇갈림에 대해서....
누구나 한 번은....
한번쯤은....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발생하는 것들.
사실...
내가 << 아 >> 라고 말했는데도....
듣는 사람에서는 << 어 >> 라고 받아드리고....
거기서 충돌이 벌어지는 갈등....
사건 사고 또한....
빈번하게 겪게 되는 일상이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결국 나와 남은....
별개의 다른 사람이었다.
생각도...
살아왔던 삶의 시간도....
가치관도 모두 다 다른데....
단지 같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이 같을 수 없는 게....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조금은...
섭섭하고...
조금은 마음이 상해있다고 해도...
결국 이해하고 다시 돌아와 줄 것이라고....
너무도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쌓이면....
결국....
점점 사이가 벌어지면서.....
어느 순간....
굳게 이어졌다고 생각했던 마음도....
인연도.....
뚝~!!!!!!!!!
부러질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는....
그때는 너무 순진하고...
멍청했다.
**************
얼마를 마셨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자리 만으로 끝을 내지는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래와 소미....
술자리를 끝내고 그녀들과 함께 노래방에도 갔었다.
현란한 조명.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소리.
빵빵한 반주 속에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이곳에서도....
캔 맥주를 마시며 가수가 된 듯....
온몸과 정성으로 열창을 쏟아냈다.
민희와 함께 불렀던...
그리고 그녀가 가르쳐준 가요를 부르면서....
가슴 속에 맺혔던 무언가를 쏟아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직접 노래는 부르기 보단....
좌석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구경하면서 더욱....
기분은 좋았던 것 같다.
모두다 나래와 소미의 활약 덕분이었다.
어찌나 둘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놀던지....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신이 났다.
그 바람에 나래와 소미가 함께 부르는....
여자 아이돌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신나게 탬버린을 쳤던 것 같다.
다음날에도....
손바닥에 빨갛게 부어있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거기에다가....
두 콤비의 노래 솜씨가 장난 아니었다.
둘이 함께....
댄스 안무까지 맞춰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확실히 우리나라에 왜 노래방이 많은지...
왜 흥이 많은 민족이라는 것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나....
나래와 소미가 무슨 듀엣으로....
노래자랑이라도 출전하려고....
준비하는 줄 알았다.
어찌나 맛깔스럽게....
노래와 춤을 소화하는지....
라이브 공연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잘 모르던 아이돌의 노래인데도....
저렇게 귀엽고 예쁜 가요가 있을 줄이야.
민희도 노래를 좋아하지만....
저런 깜찍한 노래는 부르지 않아서....
전혀 몰랐다.
가끔 남자 동기들 대화에서 왜....
그 여자 아이돌 얘기가 간간히 흘러 나왔는지....
새삼 깨달았다.
물론...
약간 알코올 기운에....
내 기분이 업된 것 또한....
큰 보정 효과가 들어갔겠지만....
역시나...
나래와 소미....
둘이 불러주는 노래에....
탬버린이 부서져라 흔들어댈 가치가 있었다.
즐거웠다.
간만에...
마음껏 소리 지르고....
웃고 신나게 맥주를 마셨다.
이래서...
사람은...
술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며....
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즐겁고...
행복하고 유쾌한 기분에....
마음껏 웃음을 발산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어찌 됐든 간만에....
거나하게 취했던 것 같다.
요 근래...
아니....
민희와 사귀면서....
이렇게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언제나 절제하면서....
또 민희와 사랑을 나누려면....
당연히 선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이미 호프집에서부터....
내 리미트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래서 노래방 이후 부터는....
아예 필름이 뚝뚝 끊어지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흔들리는 색색의 조명.
누군가 내 양쪽에서 부축하면서 걷는 느낌.
세상이 다 내 것 같고....
어느 것 하나 부러운 게 없는....
기분 속에서 어디론가 천천히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간간히 들리는 목소리.
나를 부축하는 손길들.
분명 나래와 소미였을 텐데...
아쉽게도 그녀들의 몸이 건네주는 감촉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비틀거리는 나를 잡으려고 애쓰던 느낌은 있는데....
민희가 팔짱을 끼고 걸으면서 느꼈던...
부드러운 감촉이나...
뭉클거리는 느낌 같은 것은...
이상하게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확실히...
온몸을 다해....
그녀들이 나를 부축하며 몸을 붙이고 있었는데....
왜 그것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길거리를 한참 걸어가는 듯 싶더니.....
순간 또 시간이 뚝 끊어져 버리고....
어느새 다시 이어진 시간 속에서는....
내가 누워 있었다.
따듯한 공기.
폭신한 감촉.
그리고....
유난히 환해진 불빛에....
눈을 힘겹게 떴는데 위로 낯선 천장이 보였다.
뭐지...
여기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깜빡거리며 좌우로 고개를 돌려보니...
볼에 시원한 시트가 닿으며 확인된 곳은....
바로 침대 위였다.
익숙한 인테리어.
어디서나 보던 풍경.
아마도 모텔방...
같았다.
누워서 달팽이처럼 느리게....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보는데....
폭신한 감촉이 출렁거리며 전신이 함께 흔들렸다.
아마도...
일반 매트리스가 아니라...
물침대 인 듯 싶었다.
등 아래에서 액체 특유의 물컹거리는 감촉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
마치 꿈 속처럼 희미하고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