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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season2. 1. 이사님(1)


season 2 1. 이사님(1) “너 요즘 재영이 만나냐?” 2학기 개강하고 첫 전공 수업. 강의실에 들어오는 사람 모두가 기찬을 발견 하자마자 다가와 묻는 말이었다. “나도 못 봐. 알잖아. 걔 요즘 인기.” 사실이었다. TV를 틀면 나오는 게 재영이가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다. 라디오는 말할 것도 없고, 인기의 척도라는 메이저 광고도 벌써 여섯 개를 찍었다. ‘이 노래가 대박 날 줄 알고는 있었지만….’ 전생에 원곡자가 얻었던 인기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기찬은 그 이유가 재영이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누가 불러도 대박 났을 띵곡이 아주 임자를 만난 것이다. 길쭉길쭉하고 늘씬해서 빠른 비트의 음악에 맞춰 흐느적거리기만 해도 근사한 춤 같아 보이는 재영이의 효과가 컸다. 게다가 분장에 가까운 짙은 화장과 화려한 조명이 더해지니, 살짝만 골반을 틀고 고개를 흔들어도 너무너무 섹시했다. ‘재영이 효과라…. 솔직히 나도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어.’ 어쨌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너무나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김선주 대표가 무척 고무되었다. 며칠 전, 음반사 사무실에 갔을 때였다. “자, 여기, 네 명함.” 그녀는 기찬이 대표실에 들어가자마자 ‘이사’ 직함이 찍힌 명함을 건넸다. 그러면서 현재 돌아가는 업계 분위나 회사 사정 전반을 설명했다. “네 조언대로 스타 레코드가 에이전트 포지션으로 방송국과 직접 계약한 게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정말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라기보다는, 만족감의 표현이었다. 최근 3개월 동안의 수익이 회사의 지난 5년 치 수익을 넘어섰으니, 기쁠 수밖에.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회사가 이사 영입을 제대로 한 것 같아. 성 이사. 앞으로도 잘 부탁해. 후훗.” “에이, 대표님. 말은 바로 하셔야죠. 영입이라뇨. 제가 걸어 들어왔어요.” “그래그래. 뭐든 좋아. 굴러들어 온 복덩이로 하자고. 이쁜이.” 기분이 정말 좋은지, 평소 잘 하지 않던 농담까지 섞는 그녀였다. 물론 기찬은 들뜨는 일 없이 언제나처럼 차분했다. “저도 뭐든 상관없어요. 계약서 대로만 정산 해주시면 됩니다.” “오케이, 물론.” 사실 기찬도 그녀 앞에서는 덤덤했던 반응과 다르게 마음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환생 후, 서울대 수석 입학에 이어 두 번째 성공이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았다. ‘이번 생의 내 첫 직함은 이사님이네.’ 최근 가족들과의 섹스 공동체를 순조롭게 구축해 가던 중에 받아본 중간 성적표 같아 더욱 고양감이 크게 느껴졌다. ‘계획했던 대로 착 착 잘 진행되는구나.’ 삶은 절대로 마음먹은 대로,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뜻대로 되기는커녕 오히려 신의 장난질처럼 고난과 불행의 연속이다. 그런데, 지금 기찬은 그 운명의 길을 순탄하게 잘 만들어 가고 있었다. 회귀자로서, 염라의 가호와 함께 말이다. “성기찬. 괜찮아?” 이런저런 감상과 생각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 박혜수.” 사귀던 재영이 말고는 특별히 친한 친구가 없는 기찬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맞아 편하게 지낸 두세 명 중 하나였다. “괜찮냐니, 뭐가?” 기찬의 의아한 얼굴을 보며, 혜수가 덤덤히 말했다. “그 노래, 네가 만들었다며. 가요제에서도 듀엣으로 대상 받은 거고.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말은 장황했지만, 요지는 간단했다. 기찬의 공이 가장 큰데, 스포트라이트는 재영이가 독차지하는 상황과 그걸 지켜보는 기찬의 심정을 염려한 것이다. “신경 써줘서 고맙지만, 괜한 걱정이다.” 진심이었다. 인기곡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닌 게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재영이를 내세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 돈은 많은데, 아무도 날 못 알아봤으면 좋겠어요. 전생에 어떤 연예인이 한 말인데, 대중의 공감을 크게 얻어 한참을 짤로 돌아다녔다. 그만큼 사생활을 보장받는다는 건 공기처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소중함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영이가 열심히 활동해 돈을 벌고, 자신은 일상을 영위하며 저작권료는 두둑이 챙기게 된 건 아주 이상적이었다. ‘출세해야지, 섹스해야지, 복수도 해야지,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여러모로 최대한 노출은 피해야 한다. 나중에는 유명세가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지금은 알려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 기찬의 속을 모르는 혜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량이 넓은 건지, 속이 없는 건지. 나라면 좀 서운할 것도 같은데.” 그 말에 근처에 있던 다른 녀석들이 대화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여자친구가 잘되면 좋지 뭐. 설마 나중에 모르는 척하겠냐? 안 그러냐, 기찬?” “맞아. 솔직히 음반 판매랑 뭐 이것저것 수입은 많을 거 아냐.” 이런저런 얘기 끝에 드디어 돈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자 역시나, 모두가 기찬 주위로 몰려들어 저마다 제가 아는 정보를 근거로 생각하는 바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변진섭이 ‘희망 사항’ 한 곡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신승훈이 3집까지 번 돈으로 건물 몇 채를 샀다더라, 서태지를 봐라, 그러니 지금 음반 판매량 신기록을 쓰고 있는 이 곡으로 얼마를 벌었겠냐…. 소음 같은 그 웅성거림을 가만 듣고 있던 기찬은 괜히 웃음이 났다. ‘정말 전생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하네.’ 전생에는 과거의 추억이 됐던 것들이 지금은 다시 현재가 되고 있으니, 환생했음이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저들이 하는 말이 전부 허튼소리도 아니었다. 아직 곡 저작권 정산을 받아보지 못했지만, 이 정도 인기라면 대박은 당연지사였다. ‘전생에 이 곡 주인도 이 노래 하나로 평생 놀고 먹을 돈 다 벌었다고 했으니까, 말 다했지.’ 기찬은 또 다른 성공, 즉, 부자가 됐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가슴이 웅장해지는 희열을 만끽했다. 하지만 돈 자랑은 하는 게 아니다. 주변에 굳이 알려서 좋을 게 없어 그들의 소란을 잠재웠다. “나도 아직 잘 몰라. 보통 곡 발표하고 한 6개월은 지나야 통장에 입금된데.” 기찬의 설명에 다들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돈은 내 돈인데, 왜 지들이 아쉬워해? 웃기네.’ 돈 얘기를 밀어냈음에도 주변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그나마 다행히 주제가 다시 산만해졌다. “아, 재영이 휴학했다며?” “넌 왜 또 뒷북이야.” “그럼, 기찬인 연예인 아니냐?” 중구난방으로 시끄러웠고, 기찬은 백색 소음 즐기듯 빙긋 웃기만 했다. 이미 익숙했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편한 반응이었다. ‘요즘은 학교 어딜 가든 두 명 이상만 모이면 재영이 얘기니까.’ 충분히 이해는 됐다. 얼마 전까지 같이 밥 먹고 수업 듣던 과 동기가 하루아침에 최고 인기 가수가 됐으니 당연히 신기한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넌 정말 음악 안 해?” 그 소란스러움을 뚫고 다시 한번 혜수의 질문이 들려왔다. 기찬은 그녀를 가만 바라봤다. ‘얘, 계속 이러네.’ 단연 재영이가 모두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혜수는 계속 기찬에 관해 얘기했다. ‘날 남자로 보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순수하게 친구로서? 전생에는 유나와의 야반도주로 성장기 터전을 일찍 떠나와 딱히 마음 나누던 친구가 없었던 기찬으로서는 그 관심이 낯설었다. 정말 의외였고, 신기했다. 기찬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능력이 회귀자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친구’라는 감정적 상념을 지우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해보니까, 난 재능이 없더라. 공부나 열심히 해서 의사라도 돼야지.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그러면서 잡지에 실린 재영이의 멋진 사진을 들어 올려 보여주었다. 그건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훌륭한 설득이었다. “음. 그렇기는 해. 재영이가 원래부터 좀, 뭔가 다르기는 했어.” 납득한 듯한 혜수의 반응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도 다들 수긍한 듯 별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만, 그럼에도 혜수는 뭔가 아쉽다는 듯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그래도 그런 곡을 작곡했는데, 재능이 없는 건 아닐 거야.” 그녀는 힘내라는 듯, 기찬을 보며 밝게 웃어주었다. 기찬은 이번에도 흠칫 놀랐다. ‘낯간지럽게 왜 이래.’ 속마음과 달리, 어쩐지 그 응원이 진심이라는 걸 알 것 같았다. 가요제 대상 수상 후 모두 기찬에게 다가오려 했을 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재영과 헤어졌다는 소식과 음악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퍼지고서야 다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환호 해줄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나란히 서서 비를 맞아줄 사람은 많지 않다.’ 기찬은 옆에 앉아있는 혜수를 보며, 좋을 때 친구보다 힘들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격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박혜수. 확실히 특이해.’ 하지만 기찬의 시선은 금방 그녀의 목과 손으로 옮겨갔다. 좋은 의미의 사회적 존재로서 그녀를 보기보다는, 역시나 여자로 보려는 본능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여자라….’ 의대에서 여자는 여자가 아니었다. 거의 전우에 가까웠다. 재영이를 제외한 여학우들 전부 그랬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 친구, 박혜수는 무색, 무미, 무취한 존재였다. 남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바야바’라고 불렸다. 덩치가 커서는 아니었고, 머리 때문이었다. 자연산 곱슬머리가 거의 그 지경이었다. 당연히 헤어스타일뿐 아니라 외모 다른 어떤 부분도 꾸미거나 신경 쓰지 않았기에 더 그랬다. 아마 2000년대였다면 ‘헤그리드’라고 불렸겠지만, 지금은 아직 헤리포터가 나오기 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찬만은 그녀의 여자로서의 매력 포인트 한 가지를 꿰뚫어 봤다. ‘분명 털이 없을 거야.’ 눈썹과 잔머리를 보면 대강 알 수 있다. 그리고 선크림조차 바르지 않는데도 광이 나는 얼굴, 목, 손등의 피부를 보면, 몸이 얼마나 부드럽고 매끄러울지 견적이 나온다. 서로 맨살을 부대끼고 섞는 섹스에서 그런 피부는 분명한 매력 요소다. 거기에 털이 하나도 없는 몸과 음부라니. 남자 입장에서는 여자가 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빨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즉, 그냥 보이는 모습과 섹스 파트너로서의 가치가 전혀 다르다는 판단이었다. ‘저런 애가 맛있는 법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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