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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season2. 5. 2학년 과대(2)


season 2 5. 2학기 과대(2) “주가가 바닥이라고 생각될 때, 그때 제가 말씀드린 세 종목은 꼭 담으세요.” 누군가에게 함부로 투자 조언을 해서는 안 된다. 그건 투자자들 사이에 암묵적인 금기였다. 이유는, 투자 실패로 금전적 손실 발생 시 비난과 원망을 독박 써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욕설과 의절 정도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다. 잘못 했다간 칼부림 난다. 심지어 가족 간에도 투자 문제로 의절하고 골육상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기찬의 말은, 태도는 아주 명확하고 당당했다. 그래서 상대가 보기에 권유보다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지침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미래를 정확히 알기 때문에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최창섭도 그런 기찬의 기세를 오롯이 느꼈다.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똑똑한 후배의 조언이 어려웠다. 전문성을 보인 기찬과 달리 정보도, 주식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니 오히려 애가 타는 듯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며 물었다. “바닥? 그걸 어떻게 아는데?” 기찬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엮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신호는 감지할 수 있어요. 필요하시다면, 알려 드릴 게요.” 기찬의 말을 가만 곱씹던 조교 선배가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기찬, 넌 나중에 나 좀 따로 보자.” “네, 선배님.” 갑자기 주식 얘기로 진지한 두 사람과 달리, 나머지 2학년들은 대화 내용보다 다른 것에 신경이 꽂혀있었다. ‘복싱하다가 서울대 의대 수석 입학한 애가 가요제 대상에, 주식에…. 쟤는 뭐 하는 인간이야?’ ‘와, 별명이 독사인 선배가, 어쩜 저렇게 나긋나긋해?’ ‘교수님들에 이어서 조교 선배까지? 성기찬, 여러모로 정말 대단하다.’ 확실히 기찬과 주고받는 선배의 말투는 조금 전 사납게 후배들을 몰아붙이던 목소리와는 너무 달랐다. 그들이 느낀 그대로였다. 최창섭은 기찬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기찬도 그걸 느꼈다. ‘개이득. 시간이나 노력, 돈 들이지 않고 의외로 쉽게 마음을 산 것 같다.’ 그가 최창섭에게 그렇게까지 닿으려고 한 이유는, 앞으로 그에게 얻을 게 많기 때문이었다. 의대는 학과 특성상 학교에서의 선배가 직장 선배가 된다. 그 관계로 평생 보고 부대끼고 겪으며 살게 된다. 사이가 나빠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최창섭은 미래에 서울대 병원 원장까지 올라가는, 실력과 더불어 정치적 역량까지 갖춘 인물이다. 그런 그와 형제처럼 친하다면, 좋으면 좋았지, 나쁠 일은 없다. ‘무수히 많은 이권에 무리 없이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거다.’ 하다못해 병원 로비에 자판기 하나라도 더 놓을 수 있게 된단 말이다. 물론 기찬은 그런 금전적 기대 이익보다, 사회적 권위를 보장받으려는 심산이었다. 명예를 가진 자의 발언이 내 지지가 된다면, 그 또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강력한 무기라는 걸 잘 일기 때문에 세운 계획이었다. 즉, 물질적 부를 축적하면서 권력과 명예를 드높이겠다는, 인생의 또 다른 자산 한 축을 쌓으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찬은 입학 때부터 최창섭과 좋은 관계를 만들 방법을 모색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건이 쉽지 않아 학부 끝날 때까지 안면만 터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지금은 신이 도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실 지금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예과 2학년에게는 까마득한 선배인 그와 마주칠 일이 없다. 엮일 일은 더더욱 희박하다. 그런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꼬이며 접점이 생겼다. 기찬은 그걸 놓치지 않고 움켜잡아 기어이 기회로 만든 것이다. ‘최창섭. 내가 너에게 성공의 맛을 안겨주마. 대신 넌 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줘야겠다.’ 상대적으로 배경이 빈약한 기찬으로서는 최창섭 같은 인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집안이면 집안, 실력이면 실력, 인맥이면 인맥. 최창섭은 그야말로 다 갖춘 자였고, 그런 그와의 친분은 성공을 위한 중요 자산이 될 것이 자명했다. ‘이거, 올해는 초반부터 일이 잘 풀리네. 박혜수에 이어 최창섭까지…. 학년 시작하자마자 복덩이가 넝쿨째 들어 오고.’ 그의 생각대로였다. 이 두 사람만 챙겨도 의학계에서는 더 바랄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뜻밖의 횡재였다. ‘딱 한 사람, 정말 꼭 관계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뭐, 그건 불가능한 얘기고.’ 욕심이 과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 그래서 기찬은 마음을 다독였다. 사실 이 정도만 잘 챙겨도 목표 초과 달성이었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 운 좋게 관계를 텄으니, 두 사람을 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일이 남았다. 기찬은 눈을 번뜩이며 속으로 그 계획을 빠르게 구상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큰 그림에 맞춰 사소한 계획들이 수정되고 추가 되는 일이었다. 한창 몰입 중에 조교 선배의 목소리가 다시 전체에게 전달됐다. “이거, 예과 2년차 실습 계획서니까 나눠 갖고, 지금 당장 과대 뽑아.” 그러면서 후배들을 주욱 훑어봤다. 빠릿빠릿한 놈을 과대로 앉혀 놔야 행정실이나 조교들도 편하기에, 아무나 시킬 생각은 없어 보였다. 물론 학생들은 그 반대였다. 득이 되기보다는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되는 걸 잘 알기에, 무조건 피하려고 했다. 그래서 다들 바람에 갈대가 눕듯이 고개를 숙이고 선배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당연히 조교 정도 되는 선배가 그런 후배들 심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타협안을 내놓았다. “귀찮다는 거 알아. 하지만 잘 생각해. 의외로 혜택이 많아. 기회일 수도 있어. 그래도 자발적 지원자가 없다면, 추천도 받는다.” 기찬과의 대화 이후 한결 부드러워진 조교 선배의 말투에 학생들은 그나마 생기가 돌았다. 하나둘 고개를 다시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시선은 피했다. 괜히 눈이 마주쳤다가 과대로 낙점되면 낭패였다. 그렇게 서로 눈치를 보던 그때, 누군가 손을 번쩍 들더니 일어서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성기찬이 과대하면 잘할 것 같습니다.” 모두 발언자를 돌아봤다. 기찬도 제 이름이 거론돼 깜짝 놀랐다. “아.” 기찬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유세현, 이 새끼.’ 허동훈과 현대고 동기동창으로, 찌질한 성격도 잘 맞아 늘 함께 다니던 녀석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기찬을 과대로 추천하고 나섰으니, 그 의도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아니, 누가 봐도 기찬에게 총대를 짊어지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그나마 다행히, 조교인 최창섭은 추천한다고 무조건 덥석 받지는 않았다. “추천 이유는?” 그런 당연한 질문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독사의 눈빛에 위축된 건지, 유세현은 어물쩍 대기 시작했다. “어, 그게, 그러니까, 추천 이유는….” 안타깝게도, 독사 최창섭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고 혐오하는 태도였다. “추천했으면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의대 예과 2학년 과대가 뭐 국민학교 반장이야?!”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충분히 칼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서늘한 말과 눈빛에 유세현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래서 결국 헛발질을 해버렸다. “기, 기찬이는 노래도 잘하고, 그래서 대학가요제에서 대상도 받았고, 어, 음, 복싱도 잘해서 금메달도 땄고….” 더듬고 웅얼대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찬은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이어야 하냐. 쯧.’ 다른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괜히 앞에 있는 조교 선배에게 면목이 없고, 창피했다. - 기찬이 덕에 조금 풀린 분위기, 저 새끼가 다 말아먹는구나. 안 그래도 94학번을 한심하게 보는 조교 선배인데…. 그런 분위기였다. 그리고, 곧 닥치게 될 살벌한 분위기가 걱정되는 듯, 눈을 질끈 감는 아이들도 있었다. 독사는 피식자의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최창섭이 괜히 독사라고 불리는 게 아니기에, 다들 이제부터 큰 사달이 날 거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 기찬이가 노래도 잘하고, 복싱도 잘해서 과대로 적합하다는, 그래서 추천한다는 거구나?” 그 부드러운 음성과 따뜻한 말투에 모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장 놀란 건 당사자였다. “네? 네, 네! 마, 맞습니다!” 저도 제 실수를 자책하고 있다가 뜻밖의 다정한 공감에 구원을 얻기라도 한 듯 반색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최창섭은 의외의 질문을 했다. “세현, 네가 해 보는 건 어때?” 그 말에 유세현은 화들짝 놀라며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싫다고는 못 하겠고, 고맙다고는 더더욱 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안절부절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게, 독사는 다그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럽게 권유했다. “들으면 깜짝 놀랄만한 혜택도 있다니까?” 모두 그런 독사의 눈치를 살폈다. 윽박지르고 소리치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저는, 괜찮, 아니, 과대를 맡기에는 부족합니다.” 유세현이 이번엔 나름대로 겸손을 가장하며 비교적 깔끔하게 의사 표현을 했다. 그러자 최창섭이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다시 학생들을 둘러봤다. “그래. 그럼 다른 사람들은? 기찬이가 과대하는 거, 반대 없어?” 다들 조용했다. 여전히 분위기 파악이 쉽지 않았다. 특히 기찬은 더 죽을 맛이었다. ‘이거, 왜 이렇게 돌아가게 된 거냐. 썅.’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과대라니! 당장 자신이 이의 있다며 손을 들고 싶었다. 하지만 안 될 일이었다. 일단 꾹 참고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정말 아무도 없어? 나중에 딴 소리 하기만 해 봐.” 최창섭은 독사의 눈빛으로 강의실 구석구석 다 돌아봤다. 그때, 기찬은 그의 입가에 살짝 얹혔다 사라지는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응?’ 그건 분명 그의 지금 기분, 생각, 감정 등이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것이다. 기찬은 전생자의 감 때문인지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지금의 미소가 어떤 의미의 감정이 세어나온 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순간 문득, 최창섭이 허동훈, 유세현과 같은 현대고 선배라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일이 술술 잘 풀린다 싶더라니.’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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