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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화 season2. 50. 복수Ι(5)


season 2 50. 복수Ι(5) 기찬이 그녀들에게 건네받은 소형 녹음기를 꺼내 보이며 만족스러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금방 표정이 굳었다. “그런데, 그런 사고가 생길 줄은 정말 몰랐어. 정말 미안해.” 그 말에 송지연도 그만 개인감정을 지워내고 감상에서 빠져나왔다. 프로다운 감정 전환이었다. “얘기 다 들었어. 뭐, 원래 사고라는 게 그런 거잖아. 예고 없이 벌어지는 일을 어떻게 다 대비해.” 그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편하게 말했다.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보다, 경찰서며 병원이며, 일 뒤처리 네가 직접 도맡아 챙겼다며. 수고비까지 따로 주면서 정말 미안해하더라고, 그게 감동이었나 봐.” 같은 일을 하는 후배들이니, 그들의 감동에 누구보다 공감이 된 탓이었다. ‘언제나 도구 취급만 받았을 테니까.’ 자신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녀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몸 팔아 사기 치는 일을 하는 쓰레기 취급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사창가 창녀보다도 못한 취급에 익숙해진 이들이었다. 그런 자신들의 처지를 뻔히 알면서도 인격적으로 대한 기찬의 말과 행동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 그들에겐 결코 사소함이 아니었다. 기찬으로서는 자신도 전생에 그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기에 자연스레 챙긴 것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득이 됐다. 어찌 됐건, 일단 겸손하게 처신하기로 했다. “그래도 진짜 미안했어. 내 일 도와주다가 다친 거잖아. 그리고 누나한테도 미안하고.” 기찬은 송지연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다시 한번 다정하게 속삭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선 누나부터 빨리 나아야지. 퇴원하면 잠깐 바람이나 쐬러 가자.” 그 말에 송지연이 픽 웃었다. “나, 네 말대로 아무 생각 안 할래. 우리 진짜 사귀는 거로 착각하고 있을게.”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비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선수도 기찬의 진심은 파악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지금 그녀의 말이 그랬다. 다 믿지 않지만, 기대는 해 보겠다는 의미로 기찬은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는 긍정도 부정도 없이 마주 웃기만 했다. “몸조리 잘하고 있어. 또 올게.” 가벼운 입맞춤 후, 두 사람은 정말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애정 가득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손을 흔들었다. 둘 다 고수다웠다. 물론 기찬이 짜놓은 판 위에서의 연극에 불과한 게 사실이었지만, 그런 진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찬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가방에서 작은 비닐 지퍼백을 꺼냈다. 그러고는 병실에서 송지연 머리카락을 넘겨주면서 슬쩍 가져온 그녀의 머리카락을 그 지퍼백 안에 담았다. “김종태 회장에게 접근할 기회는 쉽지 않으니, 김하익 머리카락이나 손톱으로 하자. 어차피 같은 유전자니까.” 기찬은 송지연을 김종태 회장의 사생아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송지연을 그토록 보살필 이유가 없었다. 단지 내연녀 정도라면 더더욱 이해가 어려웠다. 그에게는 나이대별로, 지역별로, 언제 어디서든 욕정을 배설해 낼 수 있는 좆집이 전국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내 롤모델이지. 김종태 회장.’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기찬이 주차장으로 가 바이크에 막 올라탈 때였다. “어이. 성기찬.” 익숙한 목소리에 기찬이 돌아보자, 언제 어디서 나타난 건지, 이태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저 새끼가 왜 여기에….’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 반감이 큰 김하익의 수하, 감시 대상을 면회 온 타이밍, 어느 것 하나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게 없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미행.’ 방심했다는 반성과 함께 어디서부터 따라붙은 걸까를 짚어봤다. 하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안 바쁘세요? 뭘 굳이 저를 미행해요.” 확신이 없었음에도 ‘미행’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러자 이태석이 움찔했다. 어떻게 알았지? 어디서부터 눈치챘지? 그런 혼란스러움 같았다. 기찬은 회심의 미소를 감춘 채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김종태 회장님과는 연관 없어요. 송지연처럼 스파이 아니니까 괜히 힘 빼지 마세요.” 마치 다 알고 있는듯한 말에 이태석도 당혹스러움을 거두며 솔직히 대응했다. “의심스러운 게 한두 개가 아닌데 어떻게 그 말을 믿어.” 기찬은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 이 미행, 김하익의 지시일까? 아니면 독단적인 판단에서였을까? 고민은 짧았다. ‘내가 아는 김하익이라면 충분히 미행시키고도 남지.’ 워낙 의심이 많고 겁도 많은 사내다. 더구나 자신이 탐내는 기찬을 상대로라면, 더 꼼꼼하고 치밀하게 알아내려 할 것이다. ‘그래서 잠깐 방심한 걸 반성한다.’ 그의 성향을 잘 알기에 지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의 생각이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이태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금방 생각이 정리됐다. “혹시, 사장님이 시켰어요?” 기찬의 말에 이태석의 표정이 굳었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났다. ‘넌 사업이나 정치는 못 하겠다.’ 반면 이태석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한참 어린놈이 어쩜 그리 눈치가 빠른지, 그것도 학력과 상관있는 건지, 번번이 자신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웃어? 이 새끼가, 사장님이 예뻐해 주니까 기고만장하지.” 으르렁거리는 사내를 보면서도 기찬은 여전히 여유로움을 유지했다. “뭘 또 그렇게 화를 내요. 같은 회사 식구끼리.” 어깨를 으쓱하며 슬쩍 뒷걸음질 치는 기찬을 향해 이태석이 발톱을 드러냈다. “같은 식구? 까고 있네. 네가 나랑 동급인 줄 알아?!” 이번엔 기찬도 물러서지 않고 상대를 똑바로 노려봤다. “지금 나한테 안 될 텐데요.” 기찬의 시선이 일전에 이태석을 한 방에 보냈던 옆구리를 가리켰다. 한번 당한 것을 상기시키며 부상 부위, 괜찮겠냐는 의미였다. “아무튼 어린노무 새끼들은 이게 문제야.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 그는 말과 함께 손을 들어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자 지하 주차장 곳곳에서 숨어있던 덩치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각목이나 야구방망이를 든 이들도 있었다. ‘이럴 것 같더라니.’ 기찬은 예상했던 듯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됐다는 듯 목과 어깨를 풀며 이태석을 도발했다. “나도 이번엔 적당히 봐주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내내 여유로운 기찬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건지, 이태석이 이를 악물며 손짓했다. “이 새끼, 못 걷게 해.” 그러자 조금씩 기찬을 포위하듯 둘러싸던 덩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우다다다. 자신 있다는 듯 넓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던 기찬이 갑자기 차량을 일렬로 주차해 놓은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렸다. 덩치들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그를 쫓았다. “잡아!” “어딜 도망가 이 새끼야!” “거기 서!” 우루루루루. 한바탕 소란이 일더니, 이내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차량 사이로 들어갔던 선두가 퉁겨 나오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컥. 탱그랑. 알루미늄 배트가 요란하게 바닥을 굴렀고, 뒤쫒던 사내들은 주춤했다. 그 순간에도 파열음은 계속 됐다. 퍽, 퍽퍽. 콱. “아악!” 털썩. 누군가 쓰러지고, 이번엔 쇠 파이프가 공기를 찢었다. 후우웅. 휘링! 텅. 엄한 차 보닛이 찌그러졌다. 민첩하게 몸을 놀리며 공격을 피해낸 기찬은 어깨로 상대의 빈틈을 들이받았다. 터억. “윽.” 둔기를 휘두른 터라 몸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사이, 기찬의 양 훅과 어퍼컷이 순식간에 꽂혔다. 퍼억, 퍽! 뻐걱. “크억!” 풀썩. 그렇게 하나둘 쓰러지고 엎어지길 반복하더니, 넓은 주차장 안에는 어느 순간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저 긴장이 느껴지는 마른침 삼키는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꿀꺽. 두 눈을 부릅뜨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이태석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차량 사이로 들어갔던 기찬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후우우.” 길게 한숨을 내쉬는 기찬은 너무도 멀쩡했다. 둔기를 든 장정 여섯이 순식간에 쓰러졌는데, 정작 상대인 기찬은 한 대도 맞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런 미친, 뭐 저런 괴물 같은 자식이…….’ 그는 뒷걸음질 치며 슬쩍 제 갈비뼈를 더듬었다. 기찬의 말마따나, 일전의 일격은 정말로 봐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격이 다르다.’ 싸움꾼이 싸움꾼을 알아보듯, 그는 본능적으로 꼬리를 말고 있었다. 하지만 늦었다. 기찬의 눈빛이 달라져 있음을 보고 만 것이다. “저기, 기찬아. 아니, 성 실장.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은데….” 후회가 밀려드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태석은 자신이 잘 보이고 싶은 김종태 회장 앞에서 우스운 꼴을 보이게 된 것에 이를 갈았다. 그래서 김하익이 기찬을 살피라는 비교적 가벼운 지시에 자신의 사적 감정을 담았던 것이다. ‘이 일을 알게 되면, 김하익한테도 버림받는다.’ 김종태가 문제가 아니라 김하익한테까지 버려지면, 정말 최악이다. 어떻게든 이 잘못을 여기서 끊어내야 한다는 절박함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털썩. “성 실장. 정말 미안해. 내가….” 하지만 그는 말을 마저 마치지 못했다. “난 감정 없어요. 마침 기회가 좋아서, 지금은 그냥 송지연 갈비뼈 부러진 거, 그거 복수 정도?” 느긋한 기찬의 목소리와 달리, 반응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발길질이 들어왔다. 슈확! 이태석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저 시저킥을 맞으면 어찌 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 공포감에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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