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season2. 65. 재난(3)
season 2
65. 재난(3)
건물이 무너지는 걸 보고 있자니,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잠깐 멍하니 있던 기찬은 얼른 정신을 다잡고 서둘러 지하로 달렸다.
‘어떻게 다시 얻은 삶인데, 이렇게 뒈질수는 없어!’
달리면서 머릿속 정보를 살폈다.
국가 재난 기록물을 뒤지고 119 구조 기록을 뒤졌다.
‘붕괴 후 가장 먼저 구조된 생존자, 지하 1층. 식품부.’
지하 1층도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나갈 수 없다면 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도면 자료를 가지고도 정확한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들이 서로 나가겠다고 밀리는 통에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곳에 버티고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일단 구조물을 빠르게 눈으로 스캔했다.
‘구조대원들 설명 내용과 구조경로, 최종 생존자 위치.’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리며 인파를 뚫고 해당 위치로 추정되는 곳까지는 갈 수 있었다.
아직 지하까지 무너진 건 아니지만, 이미 위층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중이었다.
그 충격으로 진동과 굉음이 계속 됐고, 사람들이 비명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기찬에게도 시간은 얼마 없었다.
‘이런다고 산다는 보장은 없지만….’
정말 이대로 또 죽는 건가, 싶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마침 지금 있는 곳이 식품 매장이다.
사람들은 출구를 찾아 다 빠져나가 텅 비어 있었다.
기찬은 급박한 와중에 카트를 끌고 달리며 생수와 육포를 챙겼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떨어뜨린 옷가지와 손에 잡히는 이것저것을 닥치는 대로 담아 조금 전 찾아놓은 생존 스팟으로 옮겨갔다.
‘구조상 저쪽 기둥이 내력벽이라 그나마 지지가 되는 모양이다.’
얼추 그림이 그려졌다.
기찬은 잠깐의 틈이라도 놓치지 않고 비교적 근거리에 위치한 철제 진열대를 끌어왔다.
그걸 벽에 기울여 대놓고 그 위로 야외용 은박 돗자리며 텐트 커버며 온갖 것들을 덮어 가림막을 만들었다.
위에서 쏟아지는 건물 잔해 등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는 계산이었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철제 선반 몇 개가 더 공간을 둘러싸고 생수가 추가 됐을 때, 드디어 지하층 천장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콰아앙.
“꺄아아아!”
“사, 살려줘!”
“끄악!”
아비규환.
기찬은 자신만의 공간 안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다른 이들을 살리지 못한 것이 죄책감이 될까 두려웠다.
그런데 그때, 저만치에서 인파를 뚫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그저 인파에 휩쓸려 갈팡질팡 하는 줄 알았더니, 정확히 기찬을 보면서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기찬은 잠깐 망설이다가 이를 악물고 여자에게 달려갔다.
‘젠장….’
* * *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매장 밖에서 난데없이 소란이 일었다.
“불이야! 불! 모두 대피해요!”
방보연은 자신의 평온한 여유로움이 깨진 것에 마음이 상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소란이 인 곳을 돌아봤다.
“불이야!”
매장을 뛰어다니며 소리소리 지르는 사람은 의외로 건장하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리고 정말 커다란 쓰레기통에서 검은 그을음과 함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화재로 인해 큰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그래봐야 고작 쓰레기통 안의 불길이고, 근처에 비치된 소화기만 수십 개일 것이다.
“어머, 웬일이야. 저 사람 뭐야? 미친놈이야? 여기 사람 관리 안 하나 봐?”
근처에 있던 중년 여자가 혀를 차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러자 그 옆에 함께 있던 일행이 한술 더 떠 매장 직원을 힐난했다.
“여기 명품숍 매출 신경 안 써도 돼? 아무나 저렇게 막 올라와서 돌아다니게 두고.”
그 말에 황당하게 청년을 지켜보고 있던 매장 직원이 어쩔줄 몰라하며 달려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바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사이 소리를 지르던 청년은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나타난 보안요원들이 무전기를 들고 어지럽게 사방을 돌아다녔다.
방보연은 이미 쇼핑을 즐길 마음이 사라졌다.
흥이 깨졌다. 하지만 대신 다른 흥미가 그녀를 끌어당겼다.
‘미친놈이라도 잘생겼으면 용서가 되지.’
무엇보다, 진짜 미친놈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호기심이 끄는 대로 매장 밖으로 나와 미친놈의 행적을 뒤쫓았다.
- 칫.
- 5층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층에도 직원들 배치해. 돌아다니면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 칫.
- 네, 알겠습니다. 두 명씩 한 조로 묶어서 층별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래. 찾으면 바로 무전하고.”
- 그렇게 하겠습니다.
- 칫.
보안요원의 무선 내용을 들은 방보연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4층을 지나 3층에서 내린 그녀는 천장에 붙은 인포메이션을 확인하고 비상계단을 찾아갔다.
근처에 다다랐을 때, 비상계단 문이 덜컹 열리면서 그 미친놈이 튀어나왔다.
그는 정말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여전히 ‘불이야! 대피해!’를 외치면서.
그런데 그만 보안요원들과 딱 마주쳤다.
방보연은 첩보영화라도 보는 것 같은 스릴을 느꼈다.
‘두 눈으로 직접 노는 현장감 때문인가, 심장까지 뛰네.’
정말로 재미있어 웃음까지 났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
미친놈이 여자 요원을 번쩍 들어서 난간 아래로 축 늘어뜨리면서 섬찟함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어머!”
비명, 고함, 그리고 미친놈의 협박이 마구 뒤엉켰다.
방보연은 조심스레 눈을 떠 다시 상황을 살폈다.
그사이 미친놈의 협박이 받아들여져 안내방송이 백화점의 놀란 고객들을 다독였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정말로 저 여자를 떨어뜨릴까? 설마?!’
방보연은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다.
어느새 드라마 주인공에 감정 이입한 열혈 시청자가 되어있었다.
문제는, 미친놈 손에 목숨이 맡겨진 여자 직원이 아닌, 미친놈에게 몰입했다는 것이다.
‘어쩌려그래? 빨리 여자 끌어올려놓고 도망쳐!’
속으로 응원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 미친놈은 여자를 가뿐히 들어 올려 안전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었기에 미친놈이 그녀에게 속삭이듯 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죽기 싫으면 당장 건물 밖으로 나가. 저 사람들 데리고, 가능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내보내. 그게 당신이 천국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거야.”
그 말을 마치자마자 미친놈은 믿기지 않는 속도로 사라졌다.
직원들은 모두 여자에게 달려와 무사한지를 묻고 살폈다.
그리고 일부는 미친놈을 쫓아갔다.
“뭔가 느낌이 안 좋네.”
모든 걸 지켜본 방보연은 팔짱을 끼고 어수선한 주변을 살폈다.
단순히 미친놈의 기행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 그는 미친놈이 아니다.
어떤 확신에 차 있었고, 진심이었다.
“일단 나도 빨리 나가자.”
그녀는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진동이 느껴졌다.
“어?”
이어서 깜짝 놀랄 만큼 큰 굉음과 함께 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보연은 미친놈이 소리 지르고 다녔던 걸 떠올렸다.
건물이 무너진다.
모두 대피해라. 다 죽는다.
그런 내용을 떠올리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하이힐을 벗어들고 비상계단을 향해 뛰었다.
“씨잉. 이게 뭐야!”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로 몰렸고, 그래서 비상계단은 아직 한산했다.
방보연이 2층까지 내려갔을 때, 미친놈이 지하층으로 달려 내려가는 걸 봤다.
‘왜 1층으로 안 나가고?’
잠깐 멈칫했던 그녀는 고민할 것도 없이 미친놈을 따라 달렸다.
그가 살 곳을 알 것만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나, 미쳤나 봐.’
방보연은 숨이 가쁠 정도로 심장이 뛰는 걸 느끼면서도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걸 즐겼다.
미친놈 말이 사실이라면, 아니, 지금 돌아가는 상황만 봐도 보통 난리가 아닐 것 같은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 흥분이 즐거웠다.
따분해.
그녀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언제고 뭘 해도 따분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녀는 태어난 김에 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태어나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본능을 느꼈고, 그게 흥분됐다.
처음 살아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헉, 헉.”
그나마 평소 테니스며 수영, 골프 등으로 운동을 꾸준히 해온 덕에 이만큼이나마 뛸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또 다른 문제를 마주치게 됐다.
“어떡해!”
지하 1층 비상계단으로 사람들이 밀려드는 통에 나갈 수가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다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안 돼. 이미 무너지고 있을 거야.’
그쯤 되니 그녀의 심장을 뛰게 만든 흥분은 서서히 공포가 되어갔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평소 죽음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던 그녀다.
따분하고 무료한 삶.
당장 내일 죽어도 아쉬움도, 미련도 없었다.
그런데, 멀쩡하던 고급 백화점이 무너지는 믿기지 않는 황당한 사고 속에 발을 딛고 있다 보니 죽음이 두려웠다.
무너지는 건물과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패닉 상태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살고 싶었다.
‘김 비서님이 따라온다고 했을 때 그냥 둘걸. 씨.’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미친놈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방보연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